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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놀이터', 그 곳이 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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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놀이터', 그 곳이 배움터
  • 고경미
  • 승인 2019.11.20 11: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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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미∥군남초등학교 교사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고, 놀이를 통해 상상력과 배려심을 키운다.

작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남아동옹호센터에서 어린이들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해 진행하는 '어디든 놀이터' 프로젝트에 우리 학교가 선정됐다고 했을 때, ‘어린이들이 있는 곳, 어디든! 그곳이 놀이터가 된다.’는  철학이 담긴 문구가 나를 깨웠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아이들이 자기들의 공간을 위해 진지하게 협의하고 아이디어를 모아 그림으로 그리거나 직접 모형으로 제작도 해보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유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놀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놀 권리에 관심을 가지고 놀 권리 보장을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해야 할 교사인 내가 지금까지 아이들이 노는 꼴(?)을 보지 못해 억압해 왔다는 깊은 깨달음이 나를 내리쳤다.

과거의 나는 놀이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지만 놀이가 놀이로만 끝나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 학습과 연계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교사의 교육적 의도가 개입된 놀이, ‘놀이 학습’ 말이다.

학교에 아이들의 의견과 아이들이 원하는 디자인이 반영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어디든 놀이터'가 만들어진 이후, 아이들은 날씨나 기온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어서 좋아했다. 자신들의 상상이 현실로 구현된 공간이기에 더욱 애착을 갖는 듯 했다.

어린이 자치회의 시간에 '어디든 놀이터'를 보다 안전하고 재미있게 이용하기 위한 규칙, 이용 요일과 시간 등을 아이들 스스로 정하고 지켰다. 실내화를 신지 않고 이용하는 것이 더 깨끗하게 놀이터를 보존하면서도 안전하게 놀 수 있다며 '어디든 놀이터' 입구에 실내화를 벗어 넣어둘 장을 만들어 줄 것을 학교에 건의하기도 했다.

우리 반 2학년 학생 한 명은 '어디든 놀이터'를 너무도 좋아해 놀이터에 한 번 갔다 하면 수업 시간이 되어 다시 교실로 돌아가기까지 오랜 시간 실랑이를 해야 해서 솔직히 교사 입장에서 '어디든 놀이터'에 데리고 가는 것이 심적인 부담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자연스럽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평소 교실에서는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트램펄린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때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행복감은 덤이고,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 어떤 놀이를 할 때 어려움을 보이는지, 혼자 노는 것 같으면서도 어떤 상황에서 친구와 어울리는지, 어떻게 친구를 배려하는지, 어떤 친구와 친한지, 친구에게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지, 앞으로 어떤 사회적 기술을 가르치면 좋을지 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급식시간에 항상 친구들이 점심을 먹고 다 간 후에도 늦게 까지 점심을 먹는데, 점심을 먹으며 친구들이 밥 먹고 나서 '어디든 놀이터'에 간다는 말을 들으면 그 날은 평소보다 점심을 일찍 먹고 서둘러 놀이터로 향한다. 학교에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고 가고 싶어 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또 '어디든 놀이터'에 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칭찬스티커를 모으면 뽑을 수 있는 상품 중 ‘어디든 놀이터 10분이용 쿠폰’이 아이들의 워너비 쿠폰이라고 한다. '어디든 놀이터'가 평상시에 교육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강화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어린이 자치회를 다목적 강당에서 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휑하고 썰렁했던 다목적 강당이 '어디든 놀이터'로 바뀌고 나서 그 곳에서 어린이 자치회를 한 후로는 이전에 회의 시간만 되면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돌아다니거나 누워서 뒹구는 등의 부적응행동이 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는 '어디든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놀다가도 “놀이 시간이 끝났네요. 교실로 갑시다”하면 더 놀겠다고 고집 부리지 않고 교실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즐겁게 노는 동안 자연스럽게 규칙을 익히고 그와 더불어 어느 덧 절제와 책임의 역량이 내면화 되었을까 싶어 대견하기만 하다.

교사가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교사의 특정한 개입이 없이도 모든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차별과 편견 없이 함께 어울려 놀며 배우고, 놀이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면서 또 서로에게 배우는 그 자연스러운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놀이터가 아닌가.

아이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 놀이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곳은 어디든 진정한 의미의 배움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오늘도 놀이터에서 함께 놀며, 함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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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 2019-11-28 20:56:27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학교이군요.
글을 쓰신 군남초등학교 고경미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이런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 교육의 미래와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진다고 생각됩니다.
좋은글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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