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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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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아리랑
  • 김재흥
  • 승인 2019.10.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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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흥∥신안교육장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서 수평선이 제작 연출해놓은 직선의 법칙을 과감하게 파괴해버린 듯 견고하면서도 우람한 섬 하나가 있다.

서남해의 올망졸망한 섬들의 군집 사이에서 수평선을 완전하게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야를 가득 채울 수평선을 즐기려면 뱃길로 최소한 세 시간은 서쪽으로 달려야만 망망대해를 즐길 수 있다.

수평선이 주는 반듯함과 하늘과 바다가 합작으로 만든 광활한 직선의 강직함을 오롯이 즐기려는 순간에 문득, 눈동자에 들어오는 우뚝한 섬이 바로 가거도(可居島)이다.

가거도는 서해에 오독하니 돌출되어 있는 경이롭고 웅장한 산으로 된 섬이다.평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섬 전체가 독실산(犢實)이라고 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산 덩어리인 것이다. 글자대로 송아지가 후박의 열매를 따 먹고 자생하는 소와 염소의 섬이란다.

이곳에서 그리움은 차라리 사치라고 해야 맞겠다. 고독은 외로움을 넘어 적막의 고원을 만들고, 방파제 언저리에 휴식을 취하다 쓰러진 폐선의 낡은 기억에서 뭍을 향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읽어낸다.

뭍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되어 홀로 고독을 즐기다가 파도가 되고 스스로 갈매기가 되어 가는 섬, 낮이면 졸다가 밤이 되면 깜빡거리는 등대불이 서해 고도를 밝히기에 가끔 길 잃은 배들이 피신처로 찾아오는 곳, 이따금 찾아오는 태풍이 성가시기는 하지만 섬은 결코 저항의 깃발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성난 파도가 휘몰아칠수록 갯바위는 절벽으로 올곧게 서서 포효하며, 파도가 갯바위의 옆구리를 갉아 칠 때마다 절벽은 더 깊고도 안전하게 철새의 둥지가 되어 주었다. 서녘의 구름도 잠시 쉬어가려고 독실산의 정상을 639미터나 끌어올렸단다.

동해를 독도가 지키고 있다면 가거도는 서해의 관문이라 하겠다. 유람선의 뱃전에서 맞이한 섬은 옹이진 고독의 물결을 이기지 못해 곳곳에 천혜의 절벽을 만들고 뜬 구름을 불러들였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45㎞, 흑산도에서 남서쪽으로 70㎞ 지점이다. 우리나라 서남단에 있는 끝섬으로써 면적은 9.09㎢이고, 해안선 길이는 22㎞이다.

조선시대에는 가가도(佳嘉島, 可佳島, 家假島)로 불리다가 1896년부터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 하여 가거도(可居島)라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 소흑산도로 지명이 바뀌었다가, 다시 가거도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해안선은 거의 암석해안이며, 백령도의 해안처럼 높은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하여 장관을 이룬다. 가거도 앞 해변은 규사(硅砂)가 풍부하여 유리원료를 채취하고 있다. 독실산의 주름진 계곡을 따라 동네는 세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평지로는 가거도 초등학교 운동장과 방파제 및 인근 도로가 전부다.

가거도는 바다를 배경으로 두면서도 숙명처럼 바다의 태풍과 전쟁을 벌여 왔다. 북태평양에서 발달한 열대성 저기압의 태풍이 대륙의 고기압으로 인하여 상륙하지 못하고 서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1979년 방파제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태풍과 인간이 기술 대결을 하였으나 최근의 태풍 링링은 30년 공사로 완공된 110미터 폭을 가진 세계 최대의 방파제를 순식간에제물로 삼아 뒤엎어 버렸다.

링링의 KO승인 셈이다. 가거도 주민은 말한다. ‘잦은 설계 변경을 할 것이라 아니라 제발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공사를 하면 어떤 태풍에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연을 벗 삼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탁상공론만을 앞세운 결과이니 자업자득인 것이다.

64t에서 100t에 이르는 거대한 테트라포트를 종이짝처럼 날려버리는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기술을 논하는 게 적어도 이 섬에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새벽에 중국의 닭울음소리가 들릴 만큼 중국과 가깝다는 섬, 가거도! 멸치, 조기, 갈치, 다랑어, 돔 등 온갖 고기들이 모여들어 연중 많은 강태공들이 찾는다.

바다제비, 슴새, 쇠오리 등 철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그리움과 고독을 처절하게 즐기며, 고요와 평화를 함께 품고 끈끈한 인내를 시험 삼아 자신을 달래며 진득함의 정수를 보여주려면 이곳 가거도를 찾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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