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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야 할 때 물러서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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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야 할 때 물러서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 박 관
  • 승인 2019.10.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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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관∥칼럼니스트

 

박 관 선생님.jpg

어린 시절 나는 비교적 온순한 편이어서 싸움을 많이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혀 싸움을 안 하지는 않았다. 어떤 놀이를 하다가 억지를 부리는 상대가 있으면 늘 부딪혀 싸움을 하거나 학교에서 생활 중에 언쟁이 붙어 대화로는 더 이상 풀길이 없으면 방과 후 친구들이 지켜본 가운데 골목에서 맞짱을 떳던 기억이 아련하다.

싸움꾼으로 소문난 녀석에게 통쾌하게 이겼던 경우도 있었지만 이길 것 같았던 녀석에게 무참히 깨지는 수모를 당해야 할 때도 있었다. 조금 지나면 모든 것이 후회스럽지만 만약 그때 내가 안일을 앞세워 그냥 넘어 갔더라면 오늘날 나의 성격이 원만하게 형성됐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싸움에서 패배와 승리는 명백하게 나눠지고 그 결과는 엄청나게 크게 나타나지만 승패를 떠나 싸울 수 있다는 용기 자체로도 개인적인 감정에 충실했다는 평가는 받을 자격이 있음이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장 34절)”혁신가 이시고 개혁주의자였던 예수께서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는 자신이 주신 칼로 과감하게 절단할 것을 주문하신 구절이다.

물론 본문을 놓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를 달리할 수는 있겠지만 주된 내용은 ‘세상의 흐름에 놀아나지 말고 참을 보라’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싶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는 전쟁 아닌 전쟁 상황에 놓여있다. 2개월 가까이 접어든 조국 논쟁은 언제 끝날 줄을 모를 기세다.

해방이후 누려온 기득권세력과 검찰 그리고 언론의 무소불위가 합해 염치라는 가면조차도 벗어 버린 채 노골적으로 자신의 몫을 뺏어가는 것에 분노하며 반격하고 있다. 10여 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논두렁시계 사건’때 까지만 해도 그들의 그러한 반격은 적중하고 먹혔다.

그런데 어찌하랴.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계에서도 1등 민주국민으로 우뚝 성장해 있어 그러한 꼼수로는 결코 통하지 않는 정보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발전하고 성장한 미국이나 유럽의 역사를 보건데 모두가 피의 대가로 이루어진 역사의 부산물 아니던가?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가 그러하고, 미국의 남북전쟁이 그러하고, 독일의 나치 소탕이 그러하듯이 모두가 수십만의 피로 얼룩진 치열한 싸움의 결과임을 안다. 자유당시절에 잘 결성되고 성공할 것 같았던 반민특위를 하루아침에 빨갱이로 몰아 무참히 짓밟았던 자유당 세력과 그 당시 언론과 경찰의 작태가 재현되는 듯한 이 형국에 통합을 외치거나 중용을 이야기하거나 또는 양비론을 말하는 사람은 한국사회에 개혁을 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이번 조국을 둘러싼 논쟁이 우리 사회에 결코 나쁘지만은 않는 오히려 좋은 분기점이다. 그동안 쌓였던 적폐들을 척결하여 후손들에게 훌륭한 자산을 물려주느냐, 아니면 그러한 적폐 또한 인생이니 그대로 짊어지고 가느냐하는 치열한 싸움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단군 5,000년 역사 이래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개혁을 이룬 군주가 하나도 없는 안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득권과 싸움을 해서 이길 수 있는 군주가 하나도 없었기에 그러했으리라. 다만 한 가지 있었다면 유생들의 밥줄이었던 한자(漢字)세상을 종식시키고 오로지 우매한 백성들을 위해 선포한 세종대왕님의 한글창제가 유일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는 성공적인 개혁의 길로 가느냐 아니면 용두사미처럼 말만 무성하다가 실패로 가느냐하는 중차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혹자는 말한다. ‘대중 집회가 너무 많고 극단적이어서 국론분열의 우려가 있다’고, 사실 나도 그러한 점이 걱정이 되고 두려울 때가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사회에 기생충처럼 내재된 적폐의 갈등을 없는 것처럼 덮고 넘어가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도 느낀다. 적어도 노덕술(일본 경찰의 앞잡이)이가 김원봉(독립운동가)을 꾸짖고 나무라는 작태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불의한 사회현상을 우리 후손들에게 넘겨주어서는 절대로 아니 된다.

환부는 죽음만큼 아픈 고통이 수반될지라도 잘라내야 만이 새살이 차올라 온전한 육신으로 보존되고, 진정한 통합은 완전한 분열의 종식이 있어야 만이 가능한 작업이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극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개혁이 그렇게 성공한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으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국가로 발전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국호가 말해주듯이 대한의 주체는 국민에게 있음을 확실하게 실현하는 촛불문화제가 오늘날 우리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싸움터이자 답이다. 싸움을 무서워해서는 이길 수 없다. 다만 두려워할 필요는 있다. 싸움을 걸어서는 안 되지만 싸움을 해야 할 때 다른 이유를 들어 물러서는 것은 아주 비겁한 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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